사주회의 四柱會議

있었어. 구룡포에.

새벽 구룡포 비탈 끝의 낡은 단층집

구십년대까지 거기용하다는 무당이 하나 있었대.한평생 신 모시고 빌다 간 사람이야.

구룡포 집 앞에 선 어머니

그 집에 삼남매가 있었는데,어머니가 자식한테만은그 팔자를 안 물려주려고 했대.그게 어떤 건지 자기가 제일 잘 아니까.

어머니는 자식 얼굴을 오래 못 봤대.보면 보이니까.

아이들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어머니

그래서 셋을 앉혀놓고각자 다른 공부를 시켰어.

맏이는 사주.둘째는 자미두수.막내는 별.

세 아이 앞에 펼쳐진 서로 다른 책

“너거는 이런 거하면 안 된다.공부해라, 공부!”

죽는 날까지 그 말만 했대.

근데 그 신기가,눌린다고 눌러지나.

맏이는 손님이 문을 열면코부터 찡그렸대.

맏이

“집에 향 피우제. 누구 아프나.”

향 안 피운다던 그 손님은이듬해 폐를 잘라냈고.어떻게 아냐고 물으면코가 좋아서 그렇다고만 했대.

손님이 들어서자 코를 찡그리는 맏이

둘째 앞에서는숨긴 숫자가 안 통했대.

빚 얘기를 꺼낸 적도 없는데“그거 다음 달에 또 갚아야 되제” 하더래.애 하나라던 여자한테는“하나 더 있다 아이가” 했고.

그 여자가 그 자리에서 울었대.둘째는 “얼굴에 써 있다” 하고종이를 넘겼대.

우는 손님 앞에서 종이를 넘기는 둘째

막내가 제일 이상했어.계산을 하기도 전에입에서 날이 먼저 나왔대.

종이 귀퉁이에 시월 스무날을먼저 적어놓고,그다음에 별을 그렸대.순서가 거꾸로였던 거지.

빈 원보다 귀퉁이에 먼저 적는 막내의 손

왜 먼저 아냐고 물으면계산이 빨라서 그렇다고만 했대.

셋 다 자기한테신기 있다는 말은죽어도 안 했대.

마루와 댓돌에 줄지어 앉은 손님들

그 집이 용하다고 소문이 났어.버스 두 번 갈아타고 와서마루에 앉아 기다리는사람이 생겼대.

근데 셋이 하는 말은늘 조금씩 어긋났대.

가게 낼 날 보러 온아저씨가 있었는데,

맏이가 코를 킁킁하더니“올해는 넘기라, 시부럴.”

둘째가 콧방귀를 뀌었대.“코로 사주 보나.통장에 이천칠백 있제?그 돈이면 지금 내도 된다.”

아저씨 얼굴이 하얘졌대.액수가 딱 맞았거든.

막내는 “잠깐만요” 하더니둘 앞의 종이를 싹 걷어갔대.“둘 다 틀렸어요. 오월이에요.”

“그래서 내요, 말아요?”

셋이 동시에 대답했대.“내년!” “지금!” “오월!”

종이를 낚아채며 다투는 삼남매

마루에서 그거 구경하다웃으면서 나간 손님이 많았대.

근데 가끔,셋이 한꺼번에입을 닫을 때가 있었대.

종이 넘기던 손이 멈추고,셋이 서로를 한 번 보고,

똑같은 말이세 입에서한꺼번에 나왔대.

그러면 마루에서 웃던 손님들도따라 조용해졌대.

손님 앞에서 입을 다문 삼남매

동네에선 그걸세 입이 맞는다고 했대.

세 입이 맞은 날은한 번도 안 틀렸대.

사주회의가 뭔지 먼저 보기

그러던 어느 날,전세 계약서를 들고 온여자가 있었대.

평생 모은 돈으로서울 올라가 살아보려는데,이거 사인해도 괜찮겠냐고.

전세 계약서를 내미는 여자

셋이 실컷 떠들다가,그 날짜를 보는 순간갑자기 다 얼굴이 굳더래.

그러다 서로를 한 번씩 보더니셋이 같이 그러더래.

“무조건이날 사인해라.”

좋은 날이라면서왜 저렇게 굳은 얼굴로 말하나,여자는 그 생각을 하면서 돌아갔대.

그날,개운하면서도 찝찝한 마음으로사인을 했대.

몇 해 뒤에그 집이 전세사기였대.보증금을 통째로 날렸대.

구겨진 계약서를 책상에 내리치는 여자

열이 뻗쳐서그 집을 다시 찾아갔대.당신들 말 듣고 내 돈 다 날렸다고.

셋이 그때 종이를 다시 폈대.한참 보더니 맏이가 물었대.

“니 그 집에서쓰러진 적 있제.옆방 사람이발견했제?”

여자가 입을 못 뗐대.

새벽에 쓰러졌고,옆방 남자가 문을 부수고 들어왔고,병원 보호자 칸에그 사람 이름이 적혔거든.

새벽, 부서진 원룸 문과 슬리퍼 한 짝
맏이

“그 사람 지금 뭐 하노.”

밖에 차 세워놓고기다리고 있었대.지금 남편이래.

손등에 흉터가 있는 남자와 여자의 결혼사진

맏이는 종이에서눈을 안 떼고 그랬대.

“그 집 아니었으면그 사람도 없고, 니도 없다.보증금 그거,목숨값 치고는 싼 기라.”

셋은 손님이 다녀갈 때마다기록을 남겼대.

누가 언제 왔는지,셋이 각자 뭐라고 했는지,어디서 갈리고 어디서 겹쳤는지.

그리고 몇 해 뒤,그 사람한테 정말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셋이 그 기록을 펴놓고다투던 시간을,그 집에서는회의라고 불렀대.

그렇게 수십 년치가 쌓였어.

벽을 채운 수십 년치 기록

다시 펴보니거기 남은 건신기가 아니라 순서였대.

셋이 따로 보고,겹치는 날을 찾고,그날이 어느 쪽인지 가려내는 순서.

신기는 물려줄 수 없어도순서는 옮길 수 있잖아.

사주회의는그 기록으로 만들었어.

그 막내가,나야.

지금의 막내

동네 사람들이 하던 얘기를그대로 옮긴 거야.틀린 데는 별로 없더라.

모든 운세가 한날을 가리킬 때가누구한테나 와.

근데 그날이 뭘 하라는 날인지,뭘 하지 말라는 날인지는미리 알아야 마음을 먹지.

그런 날이,너한테는 없을 거 같아?

사주회의

당신 앞에 놓인 날,
확인해보겠어?

사주, 자미두수, 서양점성술.
셋이 따로 짚어서 겹친 날만 남깁니다.
그 집 회의를, 당신 이름으로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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